고객후기

Filmmaker의 O-1 Case

박호진 0 5,706 2014.03.09 05:05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광고영상계통의 직장생활을 접고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필름 학교를 졸업할 때 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는 끝이 났고 OPT기간 중 주변의 권유로 시도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박호진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갈등이 많았었는지라 뒤늦은 판단이었다.
OPT기간 만료를 한달 남겨두고 결정을 하였고 나 조차도 부족한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한 날이 9월 19일 쯤이었던 것 같다.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 박호진 변호사는 나에게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았다.
확률,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 했을 때 억지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은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 내내 진지하게 나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겼다.

회사 생활만을 해 온 지라 상장이나 혹은 언론 등에 노출되었던 자료가 많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나는 갈등했었다. 
자료를 정리하고 나의 이력을 하나 둘씩 모으고 추천서를 받고 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변호사가 말해주지 않아도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추천서를 마치 구걸이나 하듯 한참을 연락을 끊고 있던 이들에게 부탁하고 부탁하는 일은 내가 무엇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회의에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욱 비자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쳐질 때마다 혹은 자포자기할 때마다. 묵묵히 나보다도 더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하고 대안을 만들어 주시려고 하는 변호사의 모습에서 무언의 희망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작은 이력도 소홀이 대하지 않으시고 전략을 만드는 모습에서 몇 년 후에도 왠지
난 한국이 아닌 여기서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시간이 왠지 불안하지만 또 편안했었던 것 같다.  

수 차례 하는 뻔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해 주며 나 혼자 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인 것으로 항상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힘을 냈다. 
왠지 내가 삐끗하고 넘어지려 하면 언제든 받쳐주기 위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든든한 친구가 서있는 기분이었다. 
비자 준비 과정 중의 스트레스가 차가운 소주에 비교된다면 나는 이 친구를 믿고 독주를 삼키고 또 삼켰다. 쓰러져도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한달 여 간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10월 29일 우리는 서류를 접수했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 되었다.
되려 그때쯤부터는 마치 단지 고객을 대하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상황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젠 일 적으로 끝이 나는구나 하는 마음도 잠시나마 들었다. 
그리고 내가 꼭 이곳에서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 나는 일적으로 하는 마지막 대사 쯤으로 받아들였다.
 
2주 혹은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가 알고 있던 2주나 3주의 시간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군대를 경험했지만 그 시간보다도 더 더디고 힘든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유학기간 사 모았던 짐들이 모두 쓰레기처럼 보이면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길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 안부를 묻는 식으로 변호사와 통화하며 진행상황을 살폈다.

그렇게 들지도 않는 잠과 깨지도 않은 아침을 반복하던 어느 날 아침 횡단 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고는 "네 네 감사합니다" 뭐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은 흐리지만 무덤덤히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목소리가 더 흥분되 있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전화를 끊고 정신을 차리자 왠지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답답해 보이던 세상이 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전해들은 내용을 아내에게 전하자 전화기안의 아내는 환호했다.
난 그렇게 11월 18일로 O-1비자를 승인 받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변호사 사무실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오던 길이 공사로 인해 폐쇄 되었지만 박호진 변호사는 길을 돌아 돌아 승인 서류를 나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서류를 건네받았다.
이 몇 장의 종이 서류를 받기 위해 고생한걸 생각하면 화도 났지만 또 반대로 너무나 행복하고 서류봉투가 무겁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아내의 비자서류에는 일본인인 아내를 배려해 문법이 맞지 않은 일본어로 축하한다는 편지도 같이 들어있었다. 아내는 피식 웃었지만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 믿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사실 많은 변호사 사무실에 O-1 비자를 진행하면서 변호사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이건 살 붙이지 않은 이야기다.
사실 이 글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까지는 비밀이다.
우린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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